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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번째 이야기> 굴업도는 팔색조
  • 기사등록 2021-01-27 18:40:18
  • 수정 2021-01-27 18: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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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는 팔색조




수필가 이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서둘러 지하철을 타러 갔다. 굴업도는 멀지 않다. 서해바다, 그것도 지하철이 닿는 끝에서 조금만 가면 배를 타게 되니까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바다가 가로 놓인 곳은 역시 육지하고 다르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에서 내린 후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탄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환승 해 봤지만 섬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아서 배를 환승한 건 처음이다. 컴컴한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섬에 도착할 즈음 어느새 점심식사 때가 됐다.


섬은 작다. 한나절이면 해안선 한 바퀴 다 돌 수 있다. 주민도 일곱 가구라고 한다. 주민들은 여행객에게 숙박과 식사를 해결해 준다. 바닷물은 서해 바다답지 않게 맑다. 해안도 진흙갯벌이 아닌 모래벌이다.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굴업도라고 한다.


일행은 민박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섬 여행에 나섰다. 해안선을 따라가니 황설탕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펼쳐진다. 모래밭을 걷는데 발자국이 나를 따라온다. 영화 라이언의 딸에서 영국군이 아일랜드를 점령하던 시절, 아일랜드 여인 로즈가 영국장교와 바닷가 해변에서 데이트를 하고 돌아왔다. 남편이 어디 다녀왔냐고 물었을 때, 로즈는 산에 다녀왔다고 하지만 테이블 위에 벗어 놓은 모자에서 모래가 반짝거린다. 모래는 흔적을 남긴다. 바람이 불어와 모래가 날린다. 모래는 흔적을 남기고 바람은 흔적을 지운다. 걷다보니 신발 안에 모래가 서걱거린다.


굴업도는 마치 외국에 온 양 많은 걸 보여준다. 해변에서 경사진 산 중턱까지 이어진 모래밭은 이집트의 사막을 기억나게 한다. 전봇대 몇 주가 전선줄이 늘어진 채 서 있고 중턱에는 허물어진 집의 한쪽 벽면과 계단식 집터가 이곳이 마을이 있던 곳임을 알려준다. 마치 에게 해섬에 있는 허물어진 그리스 신전 같다.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썰물이 일 때 드러난 검은 바위들은 사진에서 본 남미의 갈라파고스 같고. 덕물산을 올라가 바닷가 조망을 보면서 숨을 돌린 후, 일몰을 보기 위해 개머리언덕을 올라갔다. 그곳은 평원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본 아프리카 초원의 축소판처럼, 수크렁과 보라색 꽃향유의 군락지가 넓게 펼쳐진 곳에 사슴들이 뛰어논다. 석양을 받아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초원과 바다. 그 앞에 펼쳐진 백패킹족의 울긋불긋한 텐트촌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다. 홍시를 닮은 해가 뉘엿뉘엿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어느덧, 어둠이 바닷물에 내려앉고 별을 찾기 시작했다.


청정한 바닷물과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상업성으로 정신없이 번쩍거리는 불빛이 없는 무공해의 모습이 머릿속에 있는 온갖 오염을 털어낸다.

굴업도는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깨끗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해변모래밭에는 회색빛 삭은 폐 밧줄과 어구(漁具)들이 늘어져 있다. 파도에 떠밀려온 생활쓰레기들은 모래펄에 묻혀있거나 바람에 뒹군다. 전봇대, 허물어진 벽과 집터들도 을씨년스럽다. 산 중턱까지 모래바람이 불어 초목은 점점 사라진다. 황량한 사구를 보면서 자연의 힘 앞에 쓰러진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굴업도 일박이일 여행은 행복감과 씁쓸함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그럼에도, 사슴의 발자국과 인간의 발자국이 자유로이 혼재하는 해변의 모래밭! 아마도 굴업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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