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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의 왕비

이 단 경/수필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거울 속에서 또 다른 내가 인사한다. 물기가 흐르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는다. 세면대 위의 거울은 오래 돼서 선명하지 않다. 포샵 처리 한 사진처럼 거미줄 같은 주름과 미세한 잡티가 보이지 않는다. 거울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나보다 젊고 더 예쁘다.

눈의 시력이 떨어져서 잘 못 보는 경향도 있다. 또 세면대 때문에 바짝 다가서지 못해서란 이유도 한 몫 한다. 세면대와 거울은 한쪽 팔 길이만큼 떨어져 있다. 물론 거울의 가로는 양팔을 벌린 만큼 길어서 세면대 옆으로 거울에 바짝 다가갈 수는 있다. 하지만 구태여 다가가지 않는다. 책을 볼 때에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면 눈을 찡그리면서 자세히 보려고 애쓰지만 욕실 거울 앞에서는 뒷걸음 칠 때도 있다. 우산장수와 나막신장수 두 아들을 둔 엄마 마음 같다.


기분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어쨌거나 거울은 세면대 위에 부착되어 있어서 몸의 상반신만 보인다. 몸에 비해 얼굴은 작은 편이라 상반신만 보면 좀 봐줄만하다고 안도한다. 7개월 된 임산부마냥 두둑한 뱃살을 굳이 보려면 볼 수 있겠지만 외면하고 싶어 더욱 안 본다.


안방에 있는 거울은 전신을 다 볼 수 있는 대형 거울이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전혀 숨겨주지 않는다. 욕실에서 세수를 끝내고 기분 좋게 거울을 보면서 한번 웃어주고 그래.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됐지 뭐. 더 바란다면 도둑심보겠지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안방에 건너오면, 마치 안방에 있는 거울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하면서 질투하듯이 강펀치를 한방 날린다.


욕실 거울은 눈 가리고 아옹하며 진실을 은폐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친구라면, 안방에 있는 거울은 솔직하게 나의 단점을 얘기해주는 친구라고나 할까. 과연 어떤 거울이 좋은 걸까.


직장 생활하던 때를 돌아보게 된다. 상사가 출근하면 어머 과장님 넥타이가 멋있어요.’ 또는 오늘따라 안색이 좋아 보여요.’ 하면서 높은 톤으로 인사를 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러면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아부하는 사람이라고 나 혼자 매도했다. 때로는 사실과 달라도 멋있다고, 혹은 젊어 보인다고 말 인심을 써도 되는 부분에 왜 그렇게 인색했는지 모르겠다. 무슨 대단하게 강직한 성품이라고. 그야말로 중대한 결정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지장이 있을 정도만 제외한다면 상대방에게 듣기 좋게 말하는 것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


특히 남편이 말을 실수할 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건 고사하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슬쩍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아량을 베풀 수 있으련만, 마치 나는 완벽한 것처럼 꼬집어서 기어이 말을 하고 만다. 정작 내가 실수 할 때는 말없이 넘어가 주길 바라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욕실의 낡은 거울 같은 사람도 참 좋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만에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후배가 대여섯 살 아래로 봐주면 얼마나 좋은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이즈음 거울을 보면서 되새겨본다.


백설공주를 아들에게 읽어 주면서 왕비는 정말 나쁘지?” 하면서도 한편, 거울 앞에서는 왕비와 같은 마음이다. 거울 앞에서 왕비의 마법거울처럼 네가 제일 예뻐!’ 하고 속삭여주길 바란다. 감히 눈같이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진 청순한 10대의 백설공주보다 더 예쁘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왕비와 무엇이 다를꼬? 본질은 결국 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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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03 1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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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jjbup772019-02-09 22:03:29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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