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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이 단 경/수필가

 

도서관에 갔다. 집에서 버스노선의 세 정류장 되는 거리를 걸었다. 따뜻한 햇살이 옆에서 속살거렸다. 마음이 상쾌하고 발걸음도 아주 가벼웠다

 

도서관 안에는 오전이라 그런지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다. 실내가 장마철에 습기 찬 방같이 눅눅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기분과는 달리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제자리였다. 시선은 계속 창밖의 연두 빛 새순을 더듬었다. 문득 건너편 빌딩에서 근무하는 친구랑 수다를 떨고 싶었다. 점심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가방을 메고서 도서관을 나왔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 로비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게시판에 붙여놓은 홍보물들을 무심코 보고 있었다. 경비하는 사람이 슬그머니 내 옆에 다가오더니 자꾸만 힐끔거리면서 쳐다본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쳐다보니 전단지를 승인 없이 붙이면 안 된다고 한다. 그 사람 생각엔 내가 전단지를 무단으로 붙이고 몰래 나갈 것처럼 보였나 보다.


순간,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우물우물하고 말았다. 그럴 때 직격탄을 멋지게 날릴 수 있는 위트가 왜 떠오르지 않는 걸까. ‘예 알겠습니다. 하고 가방을 보여줄 걸 그랬나? 차라리, 한 장만 붙이면 안 될까요? 하고 눙치면서 말할 걸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바보같이.


면바지와 헐렁한 점퍼 차림에, 앞 머리칼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핀을 꽂았고 낡은 운동화를 신은 채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싶으면서도 기분이 씁쓸했다. 갑자기 돌덩이 넣은 것처럼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운동화도 색이 바라서 더욱 초라해보였다. 햇살 때문에 들떴던 기분은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가라앉았다.


내 모습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은 나한테 책임이 있는 거겠지. 친구와 점심을 먹고 난 후,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지만 빠져들지 못하고 건성으로 했다. 기분전환 해보려고 애를 써봤으나 그럴수록 마음은 우물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얼굴빛은 호박처럼 누렇고 실금 같은 주름살이 눈언저리에 부챗살모양 퍼져 있는 그저 그런 중년의 아줌마가 있다. 우아하지도 지성미가 풍기지도 않는, 동네에서 시장을 오다가다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언짢아서 살짝 미소를 지어도 보고 또 입술에 립스틱도 바르면서 괜찮아하고 말했다.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상대편의 기분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공자도 자우라는 사람이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아주 못생겨서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했다면서 탄식을 했다고 한다. 성인도 그러하거늘 평범한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퇴직을 하고 난 후 직함이 없어지면서, 다른 사람이 위아래를 훑어보는 느낌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전에 어디 근무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이내 후회를 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나? 상대방이 그냥 느낀 대로 내버려두면 될 것을 굳이……민낯이 자신 없어서 화장을 덕지덕지한 것처럼 어색하고 낯설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한테 겉모습은 중요할 때가 있다. 때로 사람들은 첫인상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니까. 알면서도 괜찮아 겉모습이 뭐가 중요해? 내면에 충실하면 되지하면서 옷차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늘 당당했다. 40대까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용모에 자신이 없어진다. 마음속으로 괜찮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위축된다. 우아하고 고운 어르신들을 보면 부럽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오만을 부려보지만 내면 못지않게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무시 할 수 없다. 살아온 이력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 자유롭지 못하다.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안 괜찮은 이 마음을 어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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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1-27 22: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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