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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해!




이 단 경/수필가


진도는 자전거여행하기 좋다고 소문이 났다. 토요일 새벽 6, 여섯 명이서 스타렉스에 자전거를 싣고 진도로 출발했다. 마치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들처럼 신이 났다. 차안에서 고구마랑 떡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차창 밖에서 가을이 따라왔다.


12시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자전거에 올랐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 몇 사람만 보일 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전거여행에 좋은 코스라고만 생각했다. 차도로 자전거를 타도 위험을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달리면서 바닷가 쪽으로 가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알았다! 그곳에 진도항 즉 팽목항이 있다는 사실을. 왜 차도 사람도 붐비지 않는 지를 그때서야 알았던 거다. 아이들의 얼음땡놀이처럼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다.

세월호가 수장되어 있는 바다! 팽목항에 다가서면서 페달을 밟는 발바닥에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힘이 없어져갔다.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항구에 들어서자 우리는 흑백무성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회색빛 바닷물 옆에 빛바랜 노란리본만이 바람에 흔들렸다. 선착장에는 다른 섬을 오갈 때 꼭 없어서는 안 될 매표소 외에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태풍이 쓸고 간 곳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이년 전 봄에 TV에서 봤던 팽목항. 수없이 날리던 노란리본과 흐느끼던 유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창에 김이 서리듯 내 눈에서도 김이 서리다가 마침내 방울져서 자전거 핸들 위로 떨어졌다. 자전거여행을 왔다는 것이 죄스럽고 한없이 미안했다

 

2014416일 오전 헬스클럽에서, 여느 날처럼 TV를 보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속보가 나오고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뉴스에 쏠렸다. 얼마 후, 사람들은 다 구조되었다는 희망적인 뉴스가 들렸다. 그나마 다행이네 싶었다.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걸 보면서 운동을 마쳤다. 그랬다면,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그 후에 일을 열거해서 무엇 할까?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할 뿐이다

 

30대 중반 양쪽 난관에 염증이 생겨서 다 절제했다. 정상으로 임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유명하다는 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러 번 시험관아기시술을 했다. 거듭 실패하면서 빛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듯 좌절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겨우 아들 하나를 힘들게 낳았다.


 이제 초등학생인 아들을 바라보면서 중·고등학생이 된 후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까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빨리 컸으면 하고 기대한다. 어차피 세월은 가고 아들이 크는 속도에 비해 내가 늙건만 그래도 아들이 크는 것만 바란다


    나처럼 그렇게 기대하면서 17년 동안 키웠을 수백 명의 아들 · 딸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이없이 죽어갔다. 자식을 가진 어미로서, 그만큼 키운 자식을 잃는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다. 그것도 수학여행을 가다가 당한 일이라니.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잃은 그 부모들을 생각하면 불 위에 얹혀있는 오징어처럼 온몸이 오그라든다

 

우리아파트 뒤에 고등학교가 있다. 수업이 끝나면 많은 학생들이 아파트 정문 앞으로 지나간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학생들을 유심히 보면서 그 애들도 저만큼 컸겠지? 다 컸는데, 어떡해……한동안 물속에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너무 안타까웠다.


팽목항 분향소에 들어가서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학생들이 영상화면과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손을 잡아주면 마치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영정사진 앞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코파이, 과자, 사탕 등이 소복하게 놓여 있다. 이웃도시 학생들이 그 먼 바다 속에서 수장 되었거나 시신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여행 삼아 기분 좋게 다녀와도 그곳은 너무 먼 곳이었다. 그런데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다녀왔을 유가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한없이 저려온다.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디쯤일까? 어디쯤에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이 있을까. 분향소 옆에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유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콘테이너 몇 동이 있다. 부도가 나서 멈춰버린 공사장처럼 황량한 바람이 휑하니 분다. 모든 것이 정지된 화면 같다. 폐허다. 차라리 지진피해였다면 마음이 이렇게 아플까. 팽목항에 부는 썰렁한 바람이 내 몸속으로도 휩쓸고 지나가 온몸이 누더기가 된 듯하다. 분향소 방명록에 정말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라고 썼다. 다른 말은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토요일 오후 5.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로 한창 붐빌 시간인데 진도는 적막했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많이 미안했다.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은 거의 표정이 없다. 그곳은 비극의 아이콘이 되었다. 주민들도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고, 경기도 사라져서 하루아침에 날벼락 맞은 신세다.


세월호 유가족에 비할 수가 없겠지만 그 또한 마음 아픈 일이다. 우리 일행은 물건을 훔치다 들킨 사람들 마냥 팽목항을 서둘러 떠났다. 웃고 얘기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팽목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진도대교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장흥군에 있는 편백 숲으로 향했다. 가슴속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하늘도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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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0-07 08: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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