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춘천 가는 길


이 단 경/수필가

자전거로 달려서 춘천에 간다. 갈 때는 자전거로, 올 때는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을 버스나 기차로 폭 넓게 해보고 싶었다. 아침 일찍 집 가까이 있는 쌍개울에서 출발했다. 안양천과 학의천이 만나는 지점을 쌍개울이라고 부른다. 하천의 물이 만나서 흐르다 갈라진다. 개울 주변에는 자주, 남색, 진분홍, 흰색을 띤 나팔꽃들이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힌 듯 이슬을 머금고 활짝 피어 있다. 노랗고 빨간색을 띤 엄지손톱만한 작은 꽃들은 초록 공단 이불에 수를 놓은 것 같다.


시간이 이른데다 평일이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속도를 조금씩 올려본다. 자전거 바퀴가 윙윙 소리를 낸다. 마음이 날아갈 듯해서인지 바퀴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린다. 학의천변을 달리다가 과천을 진입한 후 양재천변으로 접어든다. 양재천변 자전거길에 있는 수양버들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양 팔을 벌린 만큼의 간격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자전거 타고 가다 걸릴까봐 나무 아래로 늘어진 가지를 일정하게 잘라 놓았다.


그 모습이 마치 단발머리 여중생들이 운동장 조회시간에 줄지어 서 있는 듯하다. 양재천변에서 탄천변으로 접어든 후, 잠깐 숨을 고르며 달리다 보면 잠실주변 한강 길로 이어진다. 넓은 강물을 바라보니 마음도 몸도, 목마를 때 사이다 한 병을 들이켠 것처럼 시원하다.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려 신나게 달린다. 온 몸에 땀이 주르르 흐른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날린 다음 다시 달린다. 어느새 북한강변으로 접어든다. 북한강 물줄기 끝자락에 목적지 춘천이 자리하고 있다.


자전거길 중에서 북한강길이 제일 좋다. 강변에는 달리기를 그만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카페가 곳곳에 있고, 가로수가 일렬로 보기 좋게 이어져 있기도 하고, 억새밭이 길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나무데크를 설치해 놓는 곳도 여러 군데 있어 달리기에 아주 편안하다. 경춘선의 대성리역, 청평역, 강촌역을 스치며 달린다. 20대 때 강촌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를 목청껏 불렀던 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130킬로미터를 달리다보면 많은 지류를 만난다. 하천은 만나고 헤어지며 큰 강물에 합쳐지고 이어 바다로 간다. 합쳐지고 갈라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초등학교 동창 S는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다. 내성적인 성격이랑 사는 형편이 비슷했다. 결혼한 후에도 답답할 때면 자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남편들마저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S도 나도 임신이 잘 안됐다. 그런 처지까지 비슷해서 마음을 트고 서로 위로 하곤 했다. 난 임신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후, 공무원임용시험에 합격하고 근무를 시작했다. 그 즈음 그녀는 임신을 해서 딸을 낳았다. 복권에 당첨 되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S는 간절히 바랐던 일이지만 막상 애기를 키우며 무척 힘들어했다.


시청 민원실 세무과에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S는 두 돌이 된 딸을 민원실 창가에 있는 소파에 앉히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지방세납부고지서가 발급된 지 며칠 되지 않아 끊임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와 방문한 민원인 상담으로 무척 바빴다. 전화가 뜸해진 틈을 타 S한테 다가가 몇 마디 나누며 애기의 얼굴을 보고 난 후, 바로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봤다.


애기는 첫돌 때 보다 엄마를 더욱 닮아 갔다. 한없이 부러웠다. ‘왜 나는 임신이 안 될까속상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육아에 지친 전업주부로서 나한테 위로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일하는 모습이 부러운데다 내 얼굴에서 자기를 귀찮아하는 인상을 받았는지 차 한 잔 마시고 가버렸다.


그 후, 그녀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고향친구로 유일하게 만나던 친구였는데 우린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퇴직 후에 겨우 주소를 알아내어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돌아온 건 새삼스레 다시 볼 필요 있냐는 내용의 차가운 답장이었다. S는 근무하는 내가 많이 부러웠고, 그 때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자기를 엄청 부러워한 건 모르고.


지류의 물들은 다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가는 걸까? 아니면 강에서 지류로 흘러가는 걸까?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물을 바라본다. 구불구불 흐르는 강물은 모난 곳이 없다. 아니 모난 곳도 둥글게 해준다. 물은 용서하고 포용하며 흘러가는 걸까. S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춘천을 가는 내내 갈라지고 합쳐지는 많은 물줄기를 바라보며 그 동안의 인연을 떠올린다. 무수히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 지금도 만나는 사람들. 새로운 물이 합쳐지듯 새로운 인연은 어디까지 같이 흐를까. 흐르고 흘러서 바다까지 같이 흘러갈 수 있을까. 바다까지 함께 가는 물을 그려보는데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물줄기가 만나듯 인간관계도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이사를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각종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흐르듯 만나다 어느 순간 갈라지듯 헤어진다. 지금 함께 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둥글게 흘러가야할 텐데. 흐르는 물처럼.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9-08-05 07:45:5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포토뉴스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