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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수업

 


이 단 경/수필가


전화가 왔다. 무척 반가웠다. 거의 포기하다시피하면서도 은근히 기다린 전화였다. 대안학교 선생님이 특강을 해달라고 하면서 학교를 수일 내로 방문해 어떤 곡을 가르칠 건지 알려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저학년 때 기본음계와 간단한 동요는 배웠다고 한다.


며칠 전, 하모니카를 2주에 걸쳐서 총 4시간을 수업하는 특강교사를 구한다는 문구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초등6학년생들을 가르치는 거라 아이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아서 망설였지만 경험해보고 싶었다. 작년 가을에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처음으로 가르치는 기회다. 집에서 버스정류장 두 군데를 지나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는 작은 학교라서 부담도 적었다. 취미로 하모니카를 배우다가 욕심을 좀 내서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자격증을 막상 활용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실력이 그다지 남을 가르칠 만큼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증을 취득한 김에 용기를 내서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가르칠 기회가 오다니. 공기를 잔뜩 넣은 튜브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얼마 전에 읽은 일본 할머니 작가 와카미야 마사코의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책 제목이 머릿속에서 계속 머무른다. 나이가 들어도 용기와 호기심을 갖고 도전한다면 인생은 얼마든지 재밌을 것 만 같다.


맞선 보기 위해 날짜가 정해진 아가씨처럼 마음이 설렌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눈동자들이 바닷물 위에 윤슬처럼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학생들을 만나면 무슨 말 부터 시작할까. 조금이라도 애들한테 도움 되는 내용을 말해줘야 하는데. 새로운 세계를 접할 생각을 하니 두근거린다. 괜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력서를 제출한 사람이 두 명 더 있는데도 나를 선택해준 선생님한테 고마웠다. 아직 경험할게 있어서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드디어, 수업하는 첫날 아침이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하고 교실에 들어갔다. 인사를 마치고 말할 꺼리를 연습했건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밤새 준비했는데 답이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게 빈 것처럼. 난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지만 막상 아이들을 보니 준비한 말은 기억나지 않고 진땀만 흐른다. 멍청하게 서 있을 수 없어서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하고나니 마음이 좀 진정되고 아이들 얼굴이 한 명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 담긴 눈망울들을 보면서 기뻤다. 학생이 열세 명이라 얼마 안 되는데 실력은 들쑥날쑥했다. 담임선생님은 잘 하는 애들 위주로 진도를 나가라고 했지만 못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모니카로 등대지기도 들려줬다.


그날 저녁, 우리나라 하모니카 계()에서 꽤 유명한 하모니시스트 박종성 공연에 갔다. 마침 오전에 내가 교실에서 불렀던 등대지기를 부른다. ! 내가 연주한건 연주도 아니다. 낮에 불었던 나와 비교 하면서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모니시스트의 연주는 감동 자체였다. 감정표현이 듣는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연주자는 마치 추운 겨울 바닷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공연 내내 감탄과 황홀경 속에서 허우적댔다. 결국 예술은 감동이구나

 

두 번째 수업하러 가는데도 조금 떨린다.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건만 훨씬 일찍 출발했다. 거의 다 와서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학교 건물을 바라보는데 아이들이 5층 창문에서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든다. 순간 친한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다. 순수한 애들 마음이 닭이 막 낳은 달걀처럼 따듯하게 전해져온다. , 이런 맛으로 가르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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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23 09: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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