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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나



이 단 경/수필가


나는 딸만 여섯 중 셋째 딸이다. 경조사 때 모처럼 만나는 친척들 중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누가누군지 헷갈려 한다. 그럴 때면 저는 삼번이에요혹은 셋째에요등 숫자로 알려드린다. 이름은 거의 사용을 안 한다. 우리 형제끼리 조차도 가족모임을 하는 경우 참석 여부를 문자로 알려야 할 때면 ‘3번 몇 명 참석으로 표기한다.


동성 형제가 많다보니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자주 어울리는 형제가 있다. 바로 위 둘째언니와 자주 만난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 더욱 그렇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는 어쩌다 주말에 등산을 하거나 가끔 식사를 했다. 몇 년 전에 퇴직을 해서 이제는 서로 시간이 많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같이 목욕탕을 다니고 틈틈이 아파트 앞에 흐르는 하천 변도 걷는다.

둘이서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다. 어릴 때 이야기, 부모님, 남편, 친구이야기와 심지어 고향에서 떠돌던 소문 등이 주로 소재가 된다. 마술사가 마술을 부릴 때 입에서 실타래가 끝없이 이어져 나오듯 우리 자매 이야기실타래도 끊어지지 않는다.


같은 부모님한테 태어났지만 외모도 성격도 살아온 방식조차도 언니와 나는 조금씩 다르다. 언니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자리매김했다. 형부가 직업 군인이었기 때문에 전국을 다니면서 살았다. 이사도 수없이 하면서 남매를 키우고 집안 살림만 했다. 절약정신이 철저해서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고 낡은 옷과 신발은 수선해서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까지 입거나 신었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이사 간 곳에서 제일 먼저 수선 집부터 찾았다고 한다. 신발은 하도 여러 번 밑창을 갈아서 볼이 좁아져 오히려 못 신은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듯이, 물건을 사거나 어떤 일을 결정 해야만 할 때 언니는 이것저것 재보고 또 재본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걸 자제하고 살림을 불려나갔다. 엄마조차도 내 딸이지만 너무 굳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난 결혼을 하고 난 후, 임신이 잘 안돼서 서른 살 넘어 늦게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태어난 도시에서 지금까지 평생을 산다. 알뜰하지도 않으면서 별로 앞도 내다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성격이다. 하고 싶다고 느끼면 즉흥적으로 일단 부딪혀 본다. 사치스럽게 지내지 않았지만 특별히 계산도 절약도 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운동이나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웠다. 취미로 이것저것 많이 해보았다. 악기도 여러 종류 배우다 말았다. 운동도 수영, 인라인, 자전거 등 하고 싶으면 즉각 하곤 했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지만 사고 싶으면 사고, 배우고 싶으면 배우느라 규모지게 살림을 못했다. 맞벌이를 했으면서도 재산이 증식되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돈은 쓸 만큼 나에게 늘 있을 줄 알았다.

현재 퇴직을 하고 전업주부로 있으면서 언니랑 비교가 된다. 특히 노후에 접어들면서 남편도 퇴직을 하고 연금 외에 수입은 별로 없다. 젊은 시절에 하고 싶은 걸 참고 알뜰하게 살면서 착실히 재산을 불린 언니는 여유롭게 살고 있다. 난 그냥 사는데 많이 불편하지 않지만 하고 싶은 걸 이제부터 자제해야만 한다. 언니와 나는 이 시점에서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하모니카 강사자격증을 취득한 후, 대안학교 아이들 앞에서 특강을 했는데 색다른 경험이었고 나름 뿌듯했다고 말했을 때 언니는 많이 부러워했다. 언니도 단전호흡을 오랫동안 배웠는데 욕심을 내서 강사코스를 밟았더라면 지금쯤 잘 활용할 수 있는걸 그냥 사장 시킨 게 아쉽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는데하면서.

반백을 넘겨도 여전히 하고 싶은 건 많다. 여행도 더 다니고 싶고, 다른 나라에서 한두 달 머무르면서 외국생활 체험도 해보고 싶고, 그동안 써놓은 글을 모아서 책도 발간하고 싶다. 정말 자금이 필요하다. 벌어가면서 하기엔 시간도 체력도 역부족이다. 불필요한 건 자제하고 알뜰하게 저축을 했어도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니는 날 부러워하고 난 언니를 부러워한다. 언니는 내게 그래도 하고 싶은걸 제 나이 때 해봐서 아쉽지 않고 얼마나 좋으냐고. 자기는 참고 안 했는데 지금은 나이 먹어서 하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난다고 한다. 난 언니에게 나이 먹고 몸이 쇠잔할 때 금전적으로 여유 있어서 초라하지 않고 얼마나 좋으냐고. 우리 자매는 아쉬운 부분을 서로 위로하면서 산책을 마치곤 한다. 삶의 정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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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26 2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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