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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시장가는 날




이 단 경/수필가


엄마는 새벽에 아버지하고 밭에 갔다 온다. 우리들이 일어날 때 쯤 아침밥은 다 되어간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부모님은 장에 갈 준비를 시작한다.

밭에서 따온 오이는 묻은 흙과 검불을 제거하여 한쪽에 나란히 놓고 애호박은 조심조심 긁히지 않게 씻어서 가지런히 놓는다. 풋 고추도 씻어서 비닐 봉투에 담고 깻잎은 10장 씩 포개서 실로 묶는다. 파는 겉껍질을 떼어내고 뿌리에 묻은 흙을 손으로 훑어서 제거한다. 밭에서 생산되는 작물을 돈이 되는 건 모두 손질을 한다. 밭의 한쪽에서 잡풀 취급 받는 비름나물도 뜯어서 손바닥만큼 크기로 단을 만들어 지푸라기 두세 가닥으로 묶는다. 시장 갈 채비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린애들이 머리를 맞대고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다정하다. 서로 들은 동네 소식을 나누면서 채소를 다듬는 손놀림만 부지런히 움직인다.

부모님은 농사지은 작물을 손질할 때면 자식들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들인다. 엄마는 자신이 키운 농산물에 대해서 유난스레 자부심이 강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 이 얘기 저 얘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면서 채소를 다 손질하면 커다란 빨간 고무 다라이에 조심조심 담는다. 장에 갈 준비가 다 되어 갈 때면 아버지는 보따리를 싼다. 엄마가 이고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를 가늠하고 묶어서 지게 위에 얹는다. 그 사이 엄마는 화장을 끝내고 외출옷으로 갈아입는다.


버스 정류장까지 집에서 약 일 킬로미터 정도. 고불고불한 동네 고샅길을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엄마는 머리에 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다. 아버지는 짐을 버스에 실어주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십리 길을 두 보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에서 내리면 엄마는 그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 한 손에 보따리를 들고 시장으로 걸어간다. 나는 두 동생과 놀다가 아버지랑 같이 저녁을 먹는다.


내 어린 시절 여름날의 풍경이다. 읍내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부모님은 장에 다니면서 그렇게 현금을 만들어 우리 형제들을 교육 시켰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팔아서 자식들을 가르친다는 자부심이 머리에 무거운 고무 다라이를 이었을망정 발걸음만큼은 가볍게 했을 것이다. 엄마처럼 작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서 걸어봤다. 머리가 앞뒤로 까딱까딱하고 몇 발자국 걷기 힘들었다.

시장에서 돌아올 때쯤 되면 엄마가 뭘 사올까 궁금하다. 엄마는 저녁을 먹고 난 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좀처럼 안 온다. 마음이 초조하다. 아버지는 오늘은 어머니가 늦는구나.’ 하면서 마당으로 나가서 별 한번 바라보고 들어오고, ‘늦네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동생들은 치근대다 잠들고, 난 마루 끝에서 대문 밖 달빛이 내려앉은 하얀 강물 같은 길을 한없이 바라본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아홉 번을 치고 나면 어김없이 소쩍새가 운다.


소쩍 소쩍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새의 울음소리일까?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가슴으로 아릿하게 파고든다. 엄마는 아직도 안 온다. 소쩍새가 울음을 멈춘다. ‘소쩍새 엄마는 돌아 왔나 보네. 우리엄만 언제 오나’ 10시가 넘으면서 졸음이 몰려올 때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안도감이 순간 확 밀려온다. 가족이 다 같이 있으면 따뜻하고 폭신한 이불속에 누운 것처럼 포근하다. 엄마는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눈에 졸음을 가득 담고 고무 다라이를 살펴본다. 엄마가 군것질을 사오면 정말 기뻤다.


그러나 엄마는 좀 체로 돈을 쓰지 않는다. 군것질이 있는 날은 채소가 안 팔려서 바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철없는 난, 엄마의 마음과 달리 그저 좋다. 오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동네는 가게가 없다. 유일하게 엄마가 시장가서 사온 군것질이 전부다. 그래서 더욱 기다리지만 엄마는 우리들의 바람과 달리 여간해서 사오지 않는다. 모두가 잠들어 사방이 조용할 즈음, 엄마는 장에 갔다 온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조곤조곤 들려주고 밤은 깊어만 간다.

엄마가 시장가는 건 큰언니가 결혼한 후, 형부가 운영하는 공장에 농산물을 종업원들의 식재료로 쓰면서 끝났다. 다행히 엄마가 조금 힘들어 할 즈음 동생들 학비를 언니가 부담했다. 엄마가 시장가는 대신 농사지은 채소와 동생들이 언니 집으로 갔다. 부모님은 엄마가 먼저, 7년 뒤에 아버지가 뒤따라 가셨다. 두 분이 선산에 나란히 누워계신다. 지금은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계실까.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한없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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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4-15 01: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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