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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고가 났다 ... X선 사진



이 단 경 /수필가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년간 자전거를 탄 결과다. 4월에 완성된 동해안 자전거 길에 있는 영덕 해맞이 공원을 인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힘든 오르막과 신나는 내리막을 반복으로 달리면서 인생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행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중학생 시절,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친구들과 연습을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계속 넘어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자전거가 멀게 느껴졌지만 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신경이 유난히 둔해서 같이 교육을 받는 동기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돌 때, 난 한쪽에서 타고 내리는 동작을 배우며 나머지공부를 했다. 교육의 끝 과정으로 아라 뱃길 20킬로미터를 달릴 때는 반대편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힐 것만 같아 무서웠다. 1년 뒤 다시 간 그 길은 한 방향에 두 줄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될 만큼 넓었다. 그때는 그 길이 왜 그렇게 좁았는지.


자전거 국토종주는 서해갑문(인천)에서 낙동강 하구 둑(부산)까지 633킬로미터를 대각선으로 달리는 것을 말한다. 4대강 종주는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종주하는 것이며, 국토종주와 4대강을 포함하고, 국토를 횡단하는 오천 길, 섬진강, 북한강, 제주도, 그리고 동해안 고성부터 영덕해맞이 공원까지 완주해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이다.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마치면서 한없이 뿌듯했다. 자신감이 살아나면서 다른 일도 도전하면 된다는 긍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칫 나른해지고 이제 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온 몸에 퍼지려 할 즈음, 자전거를 접해서 역동의 시간을 보낸다.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힘차게 페달을 밟아 거의 일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에 올라타면 일체가 되어 한 몸처럼 편안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 좋다고 하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그랜드 슬램 마지막 코스인 울진에서 영덕을 달리는데 안장에 닿는 부위 왼쪽좌골 뼈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몸에 익숙해져서 통증 같은 것은 없어져야 하는데 이상하다. ‘좀 무리했나? 이곳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서 그런가보다고 자가 판단을 내린다. 조금 찜찜했지만 괜찮아지겠지하면서 위안을 했다. 사흘이 지난 후 다시 양평을 다녀왔다. 속도계를 보니 108킬로미터를 탔다. 며칠 쉬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통증이 점점 더 심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다음 날 정형외과를 찾았다. 사십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의사는 아픈 상태를 듣고 나더니 일단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보자고 했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잡지책을 건성으로 넘기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머릿속은 온통 자전거를 탈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간호사의 호명을 듣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컴퓨터 전체화면에 펼쳐있는 엑스선 사진을 자세히 보더니,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탔다고 한다. 음식을 과식 하면 안 되듯, 운동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다면서 왼쪽 좌골 뼈에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좌골 뼈 사진을 봤다. 내안에 들어있는 뼈를 보면서, 의사의 설명은 귀 밖에서만 맴돌았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의 뼈 구조 그림들을 여러 번 봐왔건만, 내 것이라고 하니까 내 것인가 보다 할 뿐. 많이 낯설다. 정작 내 눈으로 볼 수 없고 단지 엑스선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내 몸 안에 존재하는 그 것. 다른 사람을 통해서 확인 받는 이 과정. 그 낯선 사진과 나는 따로 논다.


영국의 유명한 뇌신경외과 의사인 헨리 마시는 참 괜찮은 죽음에서 수술하다가 뇌를 잠시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혈관으로 덮인 이 기름진 덩어리와 그걸 보면서 내가 하는 생각이 정말로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을까? 그렇다.’ 라고 묻고 대답을 하면서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왠지 다른 사람과 뭔가 좀 다를 것 같았지만 종국에 다 같다는 것을 받아들여만 하겠지. 모든 사람한테 생기는 일은 결국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특히 주변 사람한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나한테는 건너뛰고 피해갈 것 같은 착각을 한다.

50년생인 헨리 마시는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환자들과 똑같은 살과 피로 만들어졌으며 똑같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는다. 나 역시 조만간 그들처럼 붐비는 병실 한편 어느 침대에 꼼짝없이 갇혀 내 목숨을 걱정할 것이기에라면서 현실을 받아들인다.


나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죽는다는 것을 인식했다. 다른 사람이 모두 해당된다 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점점 나이 들면서 나도 그럴 수 있다라고 서서히 받아들여진다. 내 뼈 사진이 인체해부도와 같은 것처럼 똑같은 사람이고 결국엔 나도 죽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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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4-04 08: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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