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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걷는 제주도


이 단 경/수필가


4대강 국토종주를 시작한지 어느덧 10개월이다. 처음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어느새 두 바퀴로 우리 땅 구석구석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욕심 같아서는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산천초목을 둘러보고 싶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비록 주마간산일지라도 두 바퀴로 달리면서 국토를 볼 수 있어 그런대로 만족한다.

제주도를 포함해서 4대강 등 총 10개 구간을 달리면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국토교통부에서는 자전거 여행길마다 군데군데 무인인증센터를 설치해서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수첩에 스탬프를 찍게끔 해놓았다. 한 구간씩 달리고 나면 나름대로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


봄기운이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는 3월 하순에 새벽공기를 가르며 김포공항으로 갔다. 자전거와 함께 제주도로 날아간다. 공항에서 서쪽으로 애월읍, 남쪽의 서귀포, 동쪽 성산일출봉, 북쪽으로 함덕해수욕장과 제주시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인증 도장을 찍고 공항으로 가는 34일 자전거 일주이다.

공항에서 내린 후, 동호인들은 해변도로를 한 줄로 선을 이어가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맑은 날씨와 상큼한 바람을 곁들여서 포근히 안아준다. 마음이 풍선처럼 두둥실 날아올라 갈매기를 따라간다. 자전거도 덩달아 신이 나는지 두 바퀴에서 경쾌한 바람소리를 낸다. 포세이돈이 바다에 비취빛 물감을 풀어놓았나보다. 바닷물에서는 아들 생일날 끓여준 미역국 냄새가 난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던 우리 일행은 해변에서 가까운 마을을 높고 낮은 음표처럼 들락날락 하면서 제주도의 특별한 풍경들을 눈에 담기 바빴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바퀴.’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를 흥얼거리면서 고샅길을 돈다. 작은 골목길을 돌다가 다시 해변 길을 달리다가 일몰을 맞는다. 홍시를 닮은 커다란 해가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간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밤새 눈이 내린 눈밭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처럼 또 바닷가로 달려간다. 바닷물이 햇빛에 자글자글 끓는다. 제주바다에는 은빛갈치가 놀고 있어서 더욱더 반짝 거리나 보다. 나풀나풀한 치마의 끝단 같은 해안이 끝없이 이어지고, 시커먼 연탄을 짓이겨서 뭉개놓은 듯한 용암바위 위로 하얀 물보라가 인다.

제주도에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한다. 요즘에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귀포 앞바다에서 해녀들의 강인한 모습을 보았다. 아직 바닷물이 차가울 텐데, 해녀들이 물질한다. 문득 숨비소리를 듣고 싶었다. 물질하는 곳과 해안도로사이가 조금 떨어져 있어 숨비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문태준 시인은 산문집 느림보 마음에서 숨비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가는 목숨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숨이 턱까지 찬다는 말이 있지만, 기운을 다 소진한 후에 다시 생명의 호흡이 들어가는 소리가 바로 숨비소리이다.’라고 했다. 숨비소리는 생계를 위해서 숨 쉬는 것조차 참아야 하는 해녀의 고통을 토해내고 들이 마시는 슬프고 절박한 소리다. 살아있다는 것에 가장 근원인 숨쉬기조차 참아내야 하는 해녀에게는, 운동 중에 숨 쉬는 운동이 가장 쉽다고 하는 우스갯소리조차 하면 안 될 것 같다. 손을 흔들었더니 숨을 쉬러 나온 해녀가 손을 흔들어준다.

오전에 살랑 살랑 불던 바람이 오후가 되자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역시 제주의 바람다운 위력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 맞바람이 불면 제일 힘들다. 자전거가 게걸음을 한다. 핸들을 힘껏 잡고 열심히 페달을 밟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기색이 없다. 겨울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이곳 바람을 겪고 나니 웬만한 바람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끝없이 보이는 검은 돌담. 하다못해 해변도로와 바다 사이에도 돌을 세워 놓았고 밭에도 경계석으로 돌담을 쌓아놓았다. 용암으로 된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이다. 생김새로 보면 아주 형편없는 돌이지만 그 검은 돌로 인해서 제주의 경치가 돋보인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검은 돌담 안에 무리지어 핀 유채꽃은 얼마나 노랗고 예쁜가. 돌담 옆에 자라고 있는 하찮은 풀무더기조차 초록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제주의 바닷물이 유난히 파랗고 포말이 하얗게 보이는 것도 검은 용암 바위가 바다에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안도로를 술래가 숨은 친구들 찾아내듯 샅샅이 돌았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 위의 풍경을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저릿하다. 두 바퀴로 때로는 걷듯이, 때로는 달리며 산, 바다, 강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마음속 깊이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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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04 15: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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