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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고모




이 단 경/수필가


새벽에 휴대폰 벨이 울린다.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이 새벽에 무슨 전화일까. ‘누군데? ?’ 전화는 빨리 끊어지지 않고 있다.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남편의 얼굴이 차츰차츰 굳어간다. 밤사이 막내고모가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한다.


새벽에 걸러온 전화치고 좋은 소식이 거의 없다.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다르다. 3층 수술실 앞 복도는 괴담 속에 나오는 시험 치는 교실 같은 적막한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고모부는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시계만 바라보고 고종사촌 시누이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인다.


어제의 활기차고 웃으면서 보냈던 순간들이 과연 내가 누렸던 것이었을까. 어제가 다른 세상 같다. 먼 옛날 같고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이 아득했다.


막내고모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는 남편에게 제일 가까운 육친이다. 고모랑 남편은 나이가 같다. 시어머니는 2월에 딸을 낳았고 며느리는 같은 해 5월에 아들을 낳았단다.


시어머니는 노산이라 젖이 안 나와서, 며느리가 낮에는 시누이에게 젖을 먹이고 밤에는 아들을 끼고 젖을 먹였다. 3개월 먼저 태어난 시누이는 젖 맛을 알아서 미음을 안 먹고 유난히 젖을 밝혔지만, 아들은 무던해서 아무거나 잘 먹었다. 며느리는 자기 아들에게 더 젖을 먹이고 싶었으나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못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 어머님은 며느리한테 가끔 시할머니에 대한 푸념을 하면서 그 당시 마음고생 했던 내용을 옛날이야기 하듯 전해주셨다. 남편과 고모는 그렇게 쌍둥이처럼 한집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같이 살았다. 남편에게 누나 같은, 친구 같은 고모다.


비록 나이는 같지만 그래도 고모님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실 무렵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올케언니가 자기에게 젖을 먹여서 키워줬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간병으로 보답했다. 어머님의 삭정이 같은 팔 다리를 주물러주고, 때로 말상대도 해주면서 외며느리인 내가 직장 다니는 동안 신경 쓰지 않게 해줬다.


늘 서로 의지하면서 오래 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자던 고모가 번개 맞은 나무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한다. 의식을 잃은 고모의 영혼은 어디쯤 헤매고 있을까. 3층 수술실 앞 복도의 모습과 내려다본 병원 1층 로비에서의 분주한 모습은 정지된 순간과 움직이는 순간으로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되어 마치 건너갈 수 없는 다른 세상 같다. 고모와 함께 했던 지난 순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뱀이 머리를 쳐들 듯이 일어난다.


고모는 명절 때마다 친정 식구들을 다 불러서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 기억 속에 있는 돌아가신 조상님들 얘기로 꽃을 피우곤 했다. 지난 설 명절 때도.


삼십 대 후반인 고모 딸 내외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간헐적으로 눈물을 흘린다. 딱 그 나이에 우리부부는, 간암에 걸린 어머님을 입원시키고 안절부절못했다. 고모 딸이 어느새 그때의 내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머님은 지금의 내 나이에 병원을 수시로 들락날락 하시다 끝내 돌아가셨다.


우리 삶의 해가 어느새 서녘하늘로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다. 세대가 교체되는 것일까. 부모세대가 강물에 실려 멀리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 올수 없는 것처럼 세월의 강물이 우리 앞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우리 차례이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듯이.

고모의 병명은 뇌동맥지주막하출혈이다. 수술하기 전 담당의사는 위험하므로 맘을 놓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세월이 가면서 고모의 발을 살짝 걸어서 넘어뜨렸다.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을 읽고 있었다. ‘


삶과 죽음은 따로 경계가 없어 보인다. 많은 종교수행자 들이 이것에 공감해 왔다는 것을 세세히 밝히지 않더라도 깊은 명상에 도달한 수행자들은 삶과 죽음이 손바닥과 손등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의 몸이 애당초 허술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고모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유일하게 눈을 뜨고 감는 것뿐이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고모의 삶을 떠올리며 창문 밖에 멀리 펼쳐있는 아파트 뒷산을 바라본다. 칙칙한 잿빛 산이 어느 새 연둣빛으로 차츰 차츰 바뀌어 가고 있다. 봄을 기다렸는데. 엄청난 산고를 치러야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찬란한 봄을 잉태하고서 고통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봄은 만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 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 속에 피어난 때문이겠지. 나무가 어린 연두 잎을 피어 올리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디고 땅속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가지 끝까지 물을 끌어올려 돋아나게 했기에, 경건한 마음으로 그네들을 맞이하라고 한다. 꽃과 나뭇잎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쓸쓸해서 그런지 올봄은 한 줄기 햇살이 더 따뜻하고 개나리꽃이 무척 반갑다.

아침에 눈을 뜬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다가온다. 두발로 걸으면서 꽃을 바라보고 여리디 연한 어린 나뭇잎을 조심스레 만져보며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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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17 23: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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