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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맹수경<상임논설위원>



''내 인생이 힘들 때 언제나 당신과의 시간을 기억해요.고마워요.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줘서 우리 울지 말아요.소중한 시간들 아름답게 기억해요''

서울의 부잣집 아들인 대학생 청년과  부모가 월북했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사는 외로운 시골 처녀가 나눈 짧은 여름 동안의 사랑 이야기 '그해 여름'을 본지 한 십여년쯤 됐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여주인공이 편백나무 잎으로 만든 엽서를 그리운 부모님에게 띄우면서 남자 주인공에게는 편백나무 잎이 사랑을 부른다는 사연을 들려주던 장면이다.

안타까운 이별이 찾아와 헤어진 두 남녀는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편백나무 잎 카드는 그녀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다.
편백나무에서는 사람을 부르는 향기가 난다고 한다.

아름다운 순간들은 모두 비가 오거나 물에 젖는다.
비에 젖고, 강물에 젖는 순간마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고 확인하곤 했었다.
'그해 여름’에서 아름다운 순간에 늘 비가 함께 했다는 건 이들 사랑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적인 상처가 유독 많은 이 나라에서,이들의 사랑을 가르는 배후에도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역사적 질곡 속에서 어쩔 수 없었던 걸 알면서도 석영은 자신을 위해 정인의 손을 놓았지만, 정인은 석영을 위해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 괜찮아요, 나 잘살아요'라는 메세지는 편백나무 향기에 담겨 늙은 석영에게 전해진다.
사랑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현실이 되었다.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아날로그적인 감동이 밀려왔던 영화다.
우리는 혼자서 순식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지난날의 애틋함이 얼마든지 오늘의 산뜻함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세월에 뼈아프게 긁힌 상처들이 아물때 쯤이면 무겁고 고단했던 세월이나 즐겁고 행복했던 세월 모두 다.
세월이 울어낸 추억으로 쌓인다.
쌓이는 추억만큼 어쩔 수 없이 몸살나듯 그리움이 떼로 몰려와 지천에 야단법석 피어나는 꽃들이
한순간 피었다 시들고 떠나듯 그렇게 아무런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감동이라는 추억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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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13 0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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