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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문은 언어의 질서부터가 다른 글이다
산문에 설득력이 있다면 시에게는 감동이 있다
산문이 백 사람에게 한 번씩 읽히는 문장이라면 시는 한 사람에게 백번씩 읽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를 읽을 때마다 매번 그 느낌이 다른 이유는 사실을 다룬 글이 아니라 감정을 다룬 글이라서가 아닐까...

트로이 전쟁을 가장 자세히 다룬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이다
그러나 일리아드는 영웅적 서사시의 즐거움만을 목표로 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 주고, 강한 적을 쓰러뜨리는 데서 얻는 명성보다는
동료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의 연약함은 계속 이어지는 부상과 죽음의 장면에서 드러난다
덧없음은 스러져 버린 희망과 기대,이루지 못한 약속과 완성하지 못한 계획들에서도 나타난다
이 진실들은 시인이 마련해 놓은 길고 반복적인 전투 장면을 배경으로 나타난다

일리아드의 절정은 아킬레우스의 통찰이다
그는 인간의 무력함, 하찮음을 직시하지만 그 하찮은 인간들 가운데 자신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동정한다
이것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을 인간만이 가 닿을 수 있는 지점이다

시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의 요소도 있다
言外之言...문자 밖의 문자,
차마 인간의 언어로는 모두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엇의 안타까운 세계, 상상력의 미학이 있다
시는 문자 자체의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과 언어적 상상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의미와 느낌을 발견하고 발가벗은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신성한 소망의 표현인 세계와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 시의 정신이다
시인이란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속이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이들이 되어야 한다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사물에서도 마음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들여다 본다
황인원 시인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모름지기 시인은 관찰하고(Observe), 질문하고(Ask), 귀담아 듣고(liSten), 그 결과 통찰력을 갖게 되어(Insight),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Surprise)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된다는 것은 역학적으로 다른 하나가 또다른 하나를 만나는 것이다
직선이 직선을 만나거나 곡선이 곡선을 만나는 것은 1차원적 현상의 연장일 뿐이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길 가운데 있는 것이다
길 가운데 어디쯤에서 직선의 힘으로 일어서거나 곡선의 힘으로 휘어져야 한다
시인은 길 한가운데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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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07 09: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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